한반도정신

너를 부정하며 나는 인간이 되었다

박살강 2026. 5. 5. 12:36

경계는 언제나 누군가의 살이었다

MAGA(Make American Great Again) 구호를 외치며, 유세를 펼치고 있는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룸버그 사진 제공

 

 시대와 지역을 나아가, 인종적 편견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작금의 중대한 과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제는 다른 인종은 물론 인공지능, 사이보그, 유전자 복제인간 등 이른바 포스트 휴먼에 속하는 수많은 타자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모사피엔스의 순혈성을 견지하는 그리스 로마신화,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주체를 강조하는 서구 근대의 휴머니즘적 인간관은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영국 건지섬에서 이단 혐의로 화형당하는 어머니 캐서린 코셰와 그녀의 두 딸 길레민 길버트, 페로틴 매시틴. 1556년 개신교 박해 기간 중 종교적 신념으로 인하여 화형에 처해졌다.

 

서구의 고전적 서사,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와 중세 종교, 근대 휴머니즘은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해왔다. 인간은 세계의 주체이며, 그 정체성은 순수성과 자율성 속에서 영원토록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체는 결코 스스로만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것은 항상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구축되었다. 자연은 인간의 외부로 밀려났고, 비서구는 서구의 타자로 규정되었다. 여성은 남성과 분리되었고, 장애인과 이방인은 위협적인 존재로 표상되어 광장에 매달리거나, 울타리 밖으로 내쫓겼다. 인간(man)이라는 개념은 언제나 경계 위에서 만들어졌고, 그 경계는 타자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는 테세우스 영웅상, 청동 조각상

 

이 점에서 서구의 신화적 상상력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넘어, 하나의 정치적 장치로 기능해왔다. 미노타우로스, 기가스, 사티로스, 만드라고라와 같은 존재들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인간과 동물, 혹은 식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로서, 종종 괴물, 악마, 혹은 미숙한 생명으로 규정되어 왔다. 이 상상력은 혼종성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순수한 인간 중심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인간답지 않은 것’은 제거되거나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바로 그러한 혼종적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 더 이상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 중심적 사고를 유지하려는 태도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옳은 물과 그른 물을 구분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전조세걸필 신선도 중 유해섬劉海蟾, 조선 18세기, 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두꺼비를 다루는 신선으로, 주로 누더기를 걸치고 두꺼비와 춤을 추는 늙은 걸뱅이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환상은 언제나 주변부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지배적인 질서가 규정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출현하며, 그 자체로 기존의 제도와 이데올로기를 심문하는 힘을 가진다. 따라서 환상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다시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고대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발견되는 과장되고 이질적인 '환상적인 것'들이 오히려 보통의 것을 왜소하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양주 흥국사 영산전 벽화 중 유해섬劉海蟾, 조선 후기

 

 그것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믿어온 질서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신비로운 풍경과 지형, 괴상한 사물과 자유로운 신체로써 몸소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것들은 이방적인 특성을 극대화하여 표현하기에 오히려 보통의 것 들을 왜소하게 만드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이제껏 당연시 해왔던 ‘경계 짓기’ (다시 말해, 소수자 배척으로 인해 당도한 당국의 불안정한 정치 현실과 획일적 보편 이념)에 대한 회의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일종의 풍자적 공간을 확보한다.

 

김홍도필 파상군선도, 150.3 x 51.5cm, 조선시대, 견에 채색, 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서왕모가 주체한 축제에 참가하는 각종 신선의 모습, 특이하게도 가장 우측 검은 소를 탄 인물은 '도덕경'을 읽고 있는 노자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다. 특히, 경계를 허물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공존해야 하는 현재의 조건 속에서, 동북아적 세계관은 새로운 윤리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익숙한 것들은 기이하게 변형되고, 평범한 인물들은 낯선 존재로 전이된다. 이때 생성되는 이상한 사물과 기이한 인간, 비현실적인 풍경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껏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경계들을 흔들기 위한 장치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이야기의 역사였다. 종교, 이데올로기, 국가와 같은 거대한 구조들조차 하나의 서사 위에 세워져 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가 선택되어왔는지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인가'이다.

 

용과 싸우는 카드모스, 앙포라 항아리에 블랙 피겨 기법, 기원전 560~550년, 현 파리 루브루 박물관 소장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들여온 서구의 허구적 이야기들은 몇개의 대륙을 통합하기에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충분히 성공적이었으나, 동시에 지금의 세상을 불러올 만큼 충분히 실패하였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인간과 비인간, 중심과 주변, 주체와 타자를 구분 짓는 오래된 선들을 다시 그을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지워나가는 이야기. 경쟁과 배제 대신, 관계와 공존을 상상하는 이야기가 간절하다. 동북아의 고대 신화가 보여주었던 느슨하지만 강인한 연결의 감각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단일한 중심 위에 세계를 세울 수 없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사찰벽화 중 동자를 태운 응룡, 조선 후기

 

 동북공정, 친일 식민사관, 문화대혁명 등의 정치적 폭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워진 고대 동북아 이미지를 현대로 불러와 봄으로써, 평화적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고대 동북아의 조화론적 공존의식을 견지해보자. 인류 전 시대를 통하여 허구의 서사를 상상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속적으로 강조 되어도 모자람이 없다. 인류를 지탱해 온 각종 이데올로기, 종교는 모두 상상의 스토리로 간주할 수 있으며, 따라서 스토리의 능력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그 중요성이 감쇄되지 않을 것이다.

 

십장생도10폭병풍, 214 x 370.7 cm, 조선시대, 종이에 채색, 현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이제껏 우리에게 주어져 온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새로이 떠올리게 될 이야기는 무엇이 될까. 동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겸허한 자세 및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고대 동북아적 공존의식을 가지고, 우리 앞에 임박한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지도와 상상력으로 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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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5일

박살강 작성